나는 기본적으로
종교에 그렇게 심취해서
사는 편은 아니다.
솔직히 교회에 나가기엔
주말을 써야 한다는 것이 너무 귀찮았고,
성당에 가기엔 내 정서와 안맞았다.
그래서 누가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불교' 라고 이야기한다.
교회, 성당, 절을 모두 다녀봤지만,
내 정서와 가장 잘 맞고,
마음이 편해지는 곳은 절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외할머니, 어머니 모두 불교 신자시며,
3대째 모태불교 신앙을 갖고 있다 보니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들은 탓도 있는 거 같다.
외할머니께서는 내 태몽을 이야기하시며,
나는 꼭 불교를 믿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셨다.
내 태몽을 들은대로 이야기하자면
(내가 쓰면서도 뭔가 부끄럽지만),
외할머니께서 꿈에서 댁 마당에 나와 계셨는데,
하늘에서 오색 빛이 내리쬐더니,
구름 사이로 황금 관세음보살이
아기를 안고 내려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외할머니 앞에 내려와 아기를 품에 맡기며
- 이 아기를 꼭 잘 키워야 한다
...라고 하셨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집안 어른들께서
내가 태어날 때부터 큰 사람이 될 거라는
기대를 많이 하셨다고 한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죄송...)
아무튼, 그래서 나는 기본적으로
절과 스님들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내가 정말 '신',
아니 최소한 '부처님' 은 있다고
믿게 된 일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특정 하나의 종교적인 색채를 띄고 있습니다!
혹시 불편하신 분들은 죄송하지만
참고 읽어주시거나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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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15년 여름,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던 나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생 둘과 함께
기차여행을 떠났다.
부산, 안동 등을 거쳐
정동진까지 도착한 우리는
정동진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충주로 가기 위해
정동진역 앞 편의점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며
멍 때리고 있던 그 때,
우리 쪽으로 여승(비구니?) 한 분께서 걸어오셨다.
차분하게, 느긋하지도 급하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우리 앞까지 오신 그 스님은,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합장을 하셨다.
우리 셋 중 나와 후배A는 불교, B는 무교였으나,
나와 A가 일어나 마주 합장을 하자
B도 엉거주춤 일어서 합장을 했다.
합장을 하고 마주본 스님의 모습은 참 신비로웠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8월에
온 몸을 덮는 승복을 입었으나
땀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고,
숨을 몰아쉬거나 하지도 않았다.
굉장히 하얀 피부에,
얼굴에서는 나이를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보면 40대 초반 같기도 하다가,
또 어떻게 보면 60대 후반 같기도 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깨끗하다' 라는 말과
가장 비슷한 느낌이었다.
-스님 : 놀러 오셨나 봅니다.
-나 : 아. 어제 왔다가 이제 떠나는 기차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에게는 무슨 일로...
-스님 : 아. 다름이 아니라, 제가 보시를 받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달라고 하기 너무 염치없어서,
이렇게 제가 깎아만든 염주를 판매하고 있어서
염주를 좀 보여드리려고 왔습니다.
라고 하며 스님은
우리가 앉아있던 테이블 위로 자신의 보따리를 풀었다.
보따리 안에서 나온 염주들은
소박하고 수수하게 생겼지만 뭔가
차분하고, 정성이 느껴지는 예쁘고 좋은 염주들이었다.
-A : 와.. 이걸 스님이 직접 하셨다구요?
-스님 : 모자란 실력이지만
부처님께 공을 들이며 정성스럽게 만든 염주입니다.
확실히, 일반 관광지에서 파는 염주보다는
몇 배는 더 정성이 들어가 보였다.
나와 후배A는 그 자리에서 본인 것과 어머니 것까지 총 4개를 샀고,
스님은 감사인사와 함께 합장을 하셨다.
-스님 : 정말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나 : 아... 스님 잠시만요!
나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시원한 보리차를 하나 사 와서 스님에게 건냈다.
아무리 땀 한방울 안난 모습이라지만,
이 날씨에 승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 : 오늘 날씨가 너무 더워요. 이거라도 드시면서 다니세요.
-스님 : 아이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안그래도 목이 말랐는데...
스님은 그 자리에서 보리차를 벌컥벌컥 들이키셨고,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단숨에 반을 마셔버린 스님은,
나를 찬찬히 보시더니, 싸맸던 보따리를 다시 풀었다.
-스님 : 시주님을 자세히 보니, 이게 필요할 거 같습니다.
보따리 깊숙한 곳에서 스님이 꺼낸 것은 염주였다.
일반 염주가 아닌,
알 하나가 아기 손만한, 커다란 염주였다.
코팅이라던가, 방수처리 같은 것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생 나무를 깎은 뒤 마감처리만 한 것 같은,
매끄럽지만 아무것도 없는 그런 염주였다.
처음 이 염주를 봤을 때,
굉장히 비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염주였으나,
크기가 큰 것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로는 향 때문이었다.
염주를 보따리에서 꺼내자마자,
우리 주변으로
은은한 향나무 냄새가 퍼지는 것이 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아주 강하지만 은은한 향이었다.
-나 : 아...스님. 정말 좋은 염주라는 것이 느껴지지만,
아쉽게도 제가 학생이라
이 정도의 염주를 살 돈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자 스님이 웃으며 말했다.
-스님 : 이 염주는 시주님께 그냥 드리는 겁니다.
음료수값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십시오.
-나 : 예? 아. 그래도 이건 딱 봐도 귀해보이는 염주인데...
-스님 : 제가 직접 돌아다니며 찾은
제일 귀한 향나무로 직접 깎아만든 염주입니다.
아직 손을 타기 전이니,
만지면 만질수록 광이 나며 향이 짙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스님은 마지막으로 내게 말을 하며 염주를 건냈다.
-스님 : 이 염주를 가지고 가서
시주님 아버지 차에 걸어 놓으십시오.
그럼 더 이상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입원하는 일은 없으실 겁니다.
-나 :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감사히 받겠습...어?
저희 아버지께서 그러시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는 깜짝 놀라 염주를 든 채 스님을 쳐다봤다.
내 옆에 있던 동생들도 마찬가지로 놀란 표정이었다.
사실 우리 아버지는 해마다 갑작스럽게 다치고,
입원을 1주일씩 하셨었다.
허리 디스크, 디스크 재수술, 위출혈, 타박, 찢어짐 등등...
최근 몇 년간 입원하거나 꼬매거나, 수술 등을 받지 않은 해가 없었기에,
나를 비롯한 가족들은 항상 아버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독실한 천주교 신자신 할머니께서
점집까지 다녀오셨을 정도였다.
사주로 따지면 아버지 뒤에
'칼을 문 귀신' 이 집요하게 쫓아다니기 때문이라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른 걸 떠나서,
아버지께서 병원을 자주 가시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그런데 그 사실을
오늘 처음 만난 이 스님은 어떻게 아시는 걸까.
놀란 눈을 하고 있는 내 손에
염주를 더 단단히 쥐어주신 스님은,
웃으며 우리에게 합장을 한 뒤,
처음 왔던 것처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우리를 지나쳐 걸어갔다.
-A, B : 형... 저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아셨을까요...?
-나 : 어떻게 아셨는지 한번 더 물어봐야겠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동생들을 지나쳐
스님이 걸어간 방향으로 뛰어갔다.
그렇지만 그 스님을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인파 속에 스며들어버린 건지,
그냥 연기처럼 사라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몇 초간의 짧은 순간에,
스님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신기한 경험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염주를 드렸고,
평소에 그런 걸 믿지 않으시던 아버지도
염주를 들고 바로 내려가셔서 차에 염주를 놓고 오셨다.
그리고 염주를 차에 두신 2015년 여름 이후로,
아버지께서는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아무 다친 곳 없이 잘 지내신다.
아버지께서도 이 염주 덕분인가 라고 하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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