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우리 집은 명절만 되면 성적표를 나눠 준다. 학교 성적표 말고, 집집마다 한 장씩 돌아가는 인생 성적표.할머니 댁 거실에 친척들이 20명쯤 모이면 발표 순서가 딱 정해져 있다. 큰아버지가 올해 회사에서 무슨 자리로 올라갔는지 얘기하고, 고모가 서연 누나랑 준호 형 얘기를 한다. 서연 누나는 의대 본과 3학년이고, 준호 형은 서울대를 나와 대기업에 들어갔다. 거기서 끝나면 좋겠는데 안 끝난다. 마지막은 늘 고모부 차지다."그래서 민재는 요즘 몇 등 하냐?"민재가 나다.고모부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이라서다.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뭐, 반에서 중간이면 됐지. 아빠 닮아서 맷집 하나는 좋잖아" 하고 혼자 껄껄 웃는다. 배가 같이 출렁인다. 고모부 배는 웃음보다 반 박자 늦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