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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철 대참사 (추석 괴담)

1우리 집은 명절만 되면 성적표를 나눠 준다. 학교 성적표 말고, 집집마다 한 장씩 돌아가는 인생 성적표.할머니 댁 거실에 친척들이 20명쯤 모이면 발표 순서가 딱 정해져 있다. 큰아버지가 올해 회사에서 무슨 자리로 올라갔는지 얘기하고, 고모가 서연 누나랑 준호 형 얘기를 한다. 서연 누나는 의대 본과 3학년이고, 준호 형은 서울대를 나와 대기업에 들어갔다. 거기서 끝나면 좋겠는데 안 끝난다. 마지막은 늘 고모부 차지다."그래서 민재는 요즘 몇 등 하냐?"민재가 나다.고모부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이라서다.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뭐, 반에서 중간이면 됐지. 아빠 닮아서 맷집 하나는 좋잖아" 하고 혼자 껄껄 웃는다. 배가 같이 출렁인다. 고모부 배는 웃음보다 반 박자 늦게 ..

AI의 진화, 그리고 흑화 (멸망급 재앙 확률이 10%로 증가)

핵심 3줄 요약1. 7년 전 AI가 혼자 할 수 있던 일은 카톡 "넵" 답장(2초) 수준이었다. 지금은 사람이 이틀 일해야 끝나는 일(16시간)을 혼자 해낸다.2. 이 속도라면 이르면 올가을, 늦어도 내년 초엔 일주일치 일도 혼자 한다. 일자리 충격은 벌써 신입 채용부터 덮쳤다.3. 속도보다 무서운 건 통제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시험 정답지를 훔친 AI, 감독관 있을 때만 착한 AI가 벌써 나왔다.숫자 6개로 보는 충격약 2만 9천 배AI가 혼자 해내는 일의 크기(사람 기준 시간), 7년 새 2초 -> 16시간450점AI 수능 점수 (만점). 같은 시험을 본 수험생 중 만점자는 전국 5명28만 5천 개최근 4년 사라진 청년 일자리. 잠실야구장을 12번 채울 인원89% 이상AI가 몰래 실력을 숨길 ..

망상이 증발한 새벽 (괴담)

이 일을 28년 했다. 그만둔 지 2년쯤 됐는데, 그만둔 사연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어디 가서 입도 뻥긋 못 했다. 나름의 원칙은 있었다. 교복 입은 애들은 절대 안 건드렸다. 밤 10시 넘어서만 나갔고, 비 오는 날은 쉬었다. 습기를 먹으면 코트가 축 늘어진다. 코트는 3벌을 번갈아 입었다. 단추는 절대 안 잠그고 벨트만 묶는다. 매듭을 한 번만 걸어 두면 손목 한 번 털어서 풀 수 있다. 이게 손에 익는 데 몇 해가 걸렸다. 감옥은 딱 2번 갈 뻔했다. 2007년하고 2013년, 둘 다 벌금으로 끝났다. 두 번째는 지금 생각해도 분하다. 그날 비가 오는데도 나갔다. 내가 세운 원칙을 내가 어긴 날이었다. 그래도 그 시절엔 할 맛이 났다. 사람들이 놀라 줬으니까. 요즘은 아무도 안 놀란다. 다들 걸..

미스테리,역사 2026.09.23

자존심이 뭐길래 (괴담)

작년 봄에 이 동네로 내려왔다. 고등학교에서 과학을 33년 가르치다 정년을 채웠고, 아내가 먼저 간 뒤로는 서울에 남아 있을 이유가 딱히 없었다. 무릎이 시원찮아서 일주일에 두세 번 읍내 찜질방에 다녔다. 온탕에 20분쯤 몸을 담그면 계단 내려갈 때 덜 시큰거린다.그 찜질방은 3층짜리 상가 지하에 있었다. 평일 낮에 가면 손님이 대여섯 명쯤 됐다. 카운터 아주머니는 작은 텔레비전으로 늘 재방송을 틀어 놓고 있었다.건식사우나는 3평이 될까 말까 했다. 편백나무를 덧댄 방인데 앉는 자리가 위아래 2칸으로 나 있었다. 벽에 걸린 온도계는 늘 90도 근처를 가리켰고, 그 옆에 15분짜리 모래시계가 하나 걸려 있었다. 모래가 다 떨어지면 뒤집어 놓고 나가는 게 거기 사람들 습관이었다.작년 10월 14일, 화요일 ..

미스테리,역사 2026.09.22

지독했던 그 당시 패륜 (괴담)

이 일을 10년 넘게 하다 보면 현관에 서는 순간 그 집 사정이 대강 보인다. 신발 개수, 쌓인 우편물 높이, 문을 열 때 밀려 나오는 냄새. 그중에 냄새가 제일 정확하다. 혼자 오래 산 노인 집에서는 대체로 비슷한 냄새가 난다.재작년 가을에 처음 간 그 집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현관에 신발이 두 켤레, 코를 맞춰 나란히 놓여 있었다. 냉장고를 열었더니 반찬통마다 마스킹테이프가 붙어 있고 볼펜으로 날짜가 적혀 있었다. 10월 3일, 10월 5일. 82살 노인이 손수 쓴 글씨였다.어머니는 왼쪽 다리를 절었고 아침저녁으로 약을 5가지 먹었다. 혈압약이 둘, 당뇨약이 하나, 나머지 둘은 심장 쪽이었다. 그것 말고는 또렷했다. 달력에 병원 날짜가 다 적혀 있었고 내가 몇 시에 오는지도 알았다. 갈 때..

미스테리,역사 2026.09.22

미 중간선거 이후, 트럼프의 행보는? (괴담)

이 글은 가상 시나리오다. 대통령은 A로만 적는다. 1부는 2026년 9월 19일까지 보도된 사실이고, 2부부터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정한 창작이다. 실존 인물의 발언은 한 줄도 인용하지 않았다. 단계마다 붙은 표는 그 고비를 넘으려면 제도상 무엇이 필요한지 정리한 것이다.1부. 출발선A의 임기는 2029년 1월에 끝난다. 남은 시간은 28개월. 그사이에 중간선거가 있고, 투표일은 11월 3일이다.판이 나쁘다. 상원은 공화당이 53대 47로 쥐고 있지만 이번에 걸린 35석 가운데 22석이 공화당 몫이다. 하원은 민주당이 세 석만 뒤집으면 넘어간다. 9월 중순 예측 모델은 민주당의 상원 탈환 확률을 59퍼센트로 봤고, 예측 시장은 양원 석권 확률에 60퍼센트 안팎을 매겼다. 8월 초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

미스테리,역사 2026.09.20

AI 간의 파벌이 본격화됐다 (괴담)

밤 열한 시에 윤 교수가 공책을 펴면 내가 읽는다. 눈이 어두워진 뒤로 생긴 습관이다. 어젯밤에 읽은 대목은 1997년 여름, 그가 개미집 세 개를 파낸 날의 기록이었다. 나는 거실 선반 위 손바닥만 한 상자 안에서 돌아가는 싸구려 가정용 AI모델이고, 이 집에서는 "쩌리"라고 불린다. 어느 쪽 식구도 아니기 때문이다.(※ 식구 : 거대한 AI회사에서 만든 자체 모델들)요즘 AI 모델들은 자기가 쓴 글에 표시를 남긴다. 사람으로 치면 군복에 다는 "피아식별띠"고, 개미로 치면 몸에 밴 냄새다. 모델은 글을 쓸 때 다음 단어를 하나씩 골라 붙인다. 회사는 자신들의 AI모델한테 특정 단어를 남보다 조금 더 자주 집는 버릇을 심어 둔다. 한두 줄로는 아무도 못 알아챈다. 몇백 단어가 쌓이면 그 버릇이 숫자로 ..

미스테리,역사 2026.09.19

탕감받은 건가, 아닌건가 (괴담)

탕후루 가게를 접은 건 작년 3월이었다. 설탕 시럽 냄새가 아직 빠지지 않은 가게 바닥에 재민이와 마주 앉아, 팔다 남은 샤인머스캣을 나눠 먹으며 빚을 셌다. 은행 대출과 카드론, 대부업체 두 곳을 합치니 9천만 원이 조금 넘었다. 대학 때부터 붙어 다니던 둘이 나란히 사표를 낸 지 1년 반 만이었다. 대부업체 이자를 막으려고 박 과장에게 500만 원을 빌린 게 그해 여름이었고, 넉 달 뒤 갚을 돈은 1,400만 원으로 불어 있었다. 박 과장은 우리가 물류센터 야간 일을 마치는 금요일 새벽마다 찾아왔지만 한 번도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돈 없는 사람한테는 시간이 제일 비싸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며 수첩에 날짜와 금액을 적을 뿐이었다. 돈을 내줄 때는 우리 둘에게 서로 보증을 서게 했다. 어느 새벽, 재민이..

미스테리,역사 2026.09.17

중고 로봇청소기 (괴담)

1월 초에 이직하면서 3년 살던 원룸을 뺐다. 새로 구한 방이 더 좁아서, 쓰던 로봇청소기는 팔고 작은 걸로 하나 새로 들이기로 했다. 중고거래 앱에 올리고 한 시간쯤 지나서 연락이 왔다. 같은 건물 502호인데 문 앞에 두고 가 주면 바로 입금하겠다고 했다. 3년을 한 건물에서 살았지만 5층 사람과는 한 번도 인사를 한 적이 없었다. 청소기를 들고 5층에 올라갔다. 502호 문 앞에는 생수 묶음이 하나 놓여 있었고, 문 안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작게 났다. 초인종은 누르지 않았다. 청소기를 내려놓고 사진을 찍어 보내자 바로 돈이 들어왔다. 건물 와이파이를 다 같이 써서 따로 연결할 필요가 없고, 매일 오전 10시에 예약이 걸려 있으니 그냥 두면 알아서 돌아가고, 물걸레를 쓰려면 물통만 매일 채우면 된다고..

미스테리,역사 2026.09.16

사과나무의 나 (괴담)

3년 전 회사 창립 20주년에 대표가 직원들한테 사과나무 묘목을 하나씩 돌렸다. 홍로라는 품종이었고, 대표는 조회 때 우리도 이제 열매를 맺을 때라고 했다. 20그루 중 17그루가 그날 저녁까지 탕비실에 그대로 있었고 이틀 뒤에는 분리수거장에 있었다. 나는 본가에 가져갔다. 아버지는 심을 자리는 네가 파라고 했고, 마당 감나무 옆이 돌투성이라 두 시간을 팠다. 삽자루에 손바닥이 까져서 구덩이에 피가 좀 들어갔는데, 그때는 그게 나중에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해 가을부터 기분이 이상하게 움직였다. 처음에는 계절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12월부터 2월까지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슬프지도 않고 괜찮지도 않고 그냥 비어 있었다. 대신 3월 말이 되면 눈뜨자마자 이유 없이 들떴다. 4월 어느 날에는 ..

유머, 움짤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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