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역사

기억에 머물다보면 (레딧괴담)

미스털이 사용자 2025. 2. 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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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금입니다.>

 

 

 

 

 

아침이 밝았다. 전구들이 밝게 빛났다. 간이침대 옆의 녹음기가 윙윙거리며 작동을 시작했다.

 

“좋은 아침이야, 틸리.” 녹음기가 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네 보금자리야, 두려워하지 마.”

 

비좁아 터진 숙소에 축축한 콘크리트 벽, 쌓아둔 보급 식량 몇 봉을 빼면 살풍경하기 그지없다.

 


 
“수 세대에 걸쳐―” 내 목소리가 설명을 시작했다. “―지상이 핵전쟁으로부터 회복하는 동안, 사람들은 지하 보호소로 대피했어. 평생 지하에 사느라 전쟁 이전의 세계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리고 기억을 상품처럼 거래하지. 햇살, 데이지 꽃, 북슬북슬한 양들이 뛰노는 초원… 누군가의 기억이 아니고서야 몇 세대 동안 아무도 본 적 없는 것들이야.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필수품을 구하기 위해 행복한 기억들을 팔아야 해. 벙커의 가장 깊고 안전한 곳에 사는 부자들은 그런 기억에 사족을 못 쓰지. 매달 추가 요금을 내서 우리의 나쁜 기억들을 억압하는 것도 중요해. 좋은 기억들이 사라진 채 균형이 깨지면 아무도 나쁜 기억을 사려고 들지는 않을 테니까.”

 

익숙한 개념들이었지만 조금 흐릿했다. 하도 기억을 팔아치우는 통에 뇌가 튀겨질 지경이었으니.

 

“슬슬 팔 만한 기억들이 별로 없어. 몇몇 사람들은 가장 기본적인 본능만 남을 정도로 퇴화해버렸지. 먹고 사느라고 모든 걸 팔아버린 탓이야.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사나운 동물이나 다를 바 없게 되면 그대로 벙커에서 쫓겨나. 위편의 황무지로 말이지.”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뒤 작업복의 지퍼를 채웠다. 그리고 손끝의 굳은살을 매만졌다. 장시간 노 젓기 기계를 움직이며 터빈을 돌려 에너지를 생산하던 기억이 났다.

 

“일하러 가야 해.” 내 목소리가 말했다. “좋은 기억들을 곱씹도록 해. 그게 널 버티게 해 줄 거야.”

 

나는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려 했다.

 

“네 첫 키스.” 생각났다. 나사가 녹슬어 떨어진 쇠창살 사이를 꾸역꾸역 지나갔지. 남들 눈에 안 띄려고.

 

“아빠가 너한테 정말 자랑스럽다고 해 준 날.” 생각났다. 엄마가 결혼하던 날의 기억을 되사려고 몇 달 치 봉급을 모았을 때였다.

 

“공장 바닥에서 엄마가 시나를 낳았을 때.”

 

…누구?

 

녹음기가 말할 때마다 더 이상 내게 없는 기억들이 쏟아져 내렸다. “시나가 걸음마를 뗀 날, 처음으로 한 말, 너랑 같이 일하러 나간 첫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숨이 거칠어졌다. 내… 동생이라고? 걔가 어떻게 된 거지? 어디 간 거야? 왜 동생에 대한 기억을 다 팔아버렸지?

 

“당황하지 마, 틸리. 지금 말한 것 중에 잊은 게 있다면 그 부분의 기록 테이프를 도려내도록 해. 요즘 기억을 많이 판 건 사실이지만, 다 시나를 위해서야. 그 애는 저질 기억들에 중독됐거든―전쟁 이전 세상의 마약, 롤러코스터, 도파민을 펑펑 터뜨리는 온갖 것들. 나머지는 다 팔아버렸어. 그 애의 중심 기억들을 다시 못 사면―터빈 돌리는 법, 말하는 법 같은―아무 생각 없는 좀비나 다름없어진 채 황무지로 내쫓기겠지. 다른 건 다 잊어도, 그 애만 기억하도록 해.”

 

하지만…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너무 늦은 모양이야.

 

나는 눈물을 훔치고, 기록 테이프를 도려낸 뒤 일터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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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털이] 기억의 저편 (미래 괴담, 레딧괴담)

<※ 브금입니다.>아침이 밝았다. 전구들이 밝게 빛났다. 간이침대 옆의 녹음기가 윙윙거리며 작동을 시작했다. “좋은 아침이야, 틸리.” 녹음기가 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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