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어느 대학의 등산동아리에서 생긴 이야기에요. 당시 그 동아리엔 이쁘기로 소문난 "영희"라는 신입생이 있었습니다. 물론 수많은 남자들이 집적댔고 데이트 신청부터 고백을 일삼으며 영희를 괴롭혔어요. 그런 영희에게 철수라는 어울리는 상대가 나타났고 둘은 곧 연인이 됐습니다. 철수는 영희와 연인이 된 탓에, 영희에게 쏠렸던 사랑이 분노로 바뀌어 철수에게 옮겨갔습니다. 장난이라 애둘러 말하지만 툭툭건네는 말투며 애꿎게 골탕맥이는 그들의 모습은 양아치 그 자체였어요.
그해 겨울, 그 동아리에선 기말고사를 마치면 다 같이 ★★산으로 등산가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출발 당일이 됐는데, 영희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선배들에게 따로 출발하겠다고 알렸습니다. 무슨 사정인지 다들 궁금해했지만 이내 영희는 누군가의 여자친구임을 깨닫고 오든지 말든지 관심이 사라집니다. 뒤틀린 심보는 애꿎은 "철수"에게 불똥튑니다. 철수에 대한 질투가 사그라들지 않았던지, 동아리의 몇몇 선배들이 또 골탕먹일 준비를 했습니다.
- 철수야, 동아리방이 좀 지저분한데 우리가 MT가는 준비할테니까 넌 좀 여기 정돈좀 하고 나와.
철수는 그걸 곧이곧대로 듣고 구석구석 청소하고 정리정돈했죠. 정리정돈을 마쳤다 생각할 즈음 밖을 보니 선배들은 이미 떠났습니다. 철수는 이런 장난을 많이 당했는지 별다른 반응 없이 정돈을 마무리짓고 얼른 버스정류장에 버스를 세워 뒤따라갔습니다.
한편 영희는 다행히 잘 해결돼 ★★산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습니다. 그리고 ★★산 근처에 내려 약속장소인 허름한 산장에 갑니다. 밤늦은 시각이였지만 그곳엔 환하게 밝혀져 있었고 역시 동아리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습니다.
- 늦어서 죄송해요. 등산은 내일 시작인가요?
그런데 영희의 얼굴을 본 동아리 사람들은 순간 어두워졌어요. 뭐 죽은사람 본 것 마냥 축처진 그들의 모습에 내심 놀라면서 다시 물었습니다.
- 등산 내일 아침부터 가는거죠?
아무도 대답없이 그녀를 보다가 동아리 회장이 영희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 저.. 영희야
그리고는 울음을 섞더니
- 철수가.. 철수가 죽었어. 우리가 처음에 장난만 치지 않았더라도 이럴 일은 없었을텐데 미안해.
사연인즉, 철수가 타고 오던 버스가 전복돼 그 버스에 타고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던 것. 영희는 너무 뜻밖이라 입을 다물 수 없었어요. 이 개같은 자식들이 1년간 자신과 철수에게 했던 짓거리가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철수의 선한 얼굴이 오버랩되자 열불이 올랐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쌩고생하며 이곳에 온줄 아냐, 미안하다는 말만 하면 다냐, 철수 살려내라 망할 것들아, 하나같이 산적같이 생긴 것들이 마음씨라도 고와야지 어떻게 허구헌날 내 남자친구한테 장난쳐서 이사단을 내냐.. 목구멍까지 들어찬 오만가지 얘기를 억눌러가며 영희는 풀썩 주저앉았어요.
그렇게 서로간 얘기가 오가지 않고 그저 침울한 얼굴로 마주하기를 몇십분, 갑자기 밖에서 인기척 소리가 났습니다.
- 누가 오나봐요, 선배.
영희가 인기척이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동아리 사람 모두가 영희가 고개돌린 곳으로 바라봤습니다. 과연 그 인기척 은 함성같았고 이내 이곳에 점점 다가왔습니다.
- 영희야, 너 거기있지? 얼른나와!
산장 문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 분명 철수의 목소리였어요. 죽었다고 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영희를 찾는다는 건 분명 소름 돋는 일이였어요. 영희의 머릿속엔 이상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동아리 회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모두 겁에 질려있었습니다.
- 이건 철수가 귀신돼서 너를 같이 저승으로 데려가는거야. 그냥 못들은 척 가만히 있어.
영희도 처음에 너무 무서워서 그들의 말에 동조했지만 이유모를 철수의 고함이 점점 신경을 건드렸습니다. 귀신이라기엔 고래고래 소리지르는게 뭔가 이상했던 거죠.
- 선배, 아까전에 버스 전복됐던 거.. 철수만 간신히 빠져나와서 여기까지 온거 아니에요? 뭔 귀신이 목이 쉬기까지 해요?
- 아냐, 아까 우리들이 철수 기다리다가 낌새가 이상해서 근처 수소문하다가 알아낸거야.
그렇게 선배들은 영희에게 거듭 당부를 했지만, 철수의 고함이 처절하고 절박하게 느겨졌던지 영희는 나가기로 마음 먹습니다.
- 철수야, 니가 귀신이어도 상관없어. 왜 그렇게 날 부른거야?
영희는 자신 앞에 있는 철수가 귀신이라는 무서움보단 다시 만나 기쁜 마음이 더 컸어요. 한달음에 와락 안아서 버스에서 무슨 사고를 당했는지 묻고싶었습니다.
- 너 얼어뒤질려고 환장했어? 그리고 내가 뭔 귀신이야?
말은 꽤 거칠었어도 눈물이 제법 섞여있던 철수는 얼른 영희를 안았습니다.
- 약속장소에 너무 늦게 도착해서 어쩌나 했는데 창문 너머로 너 혼자 멍하니 가만히 있더라. 그 추운데서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지 생각했는데 귀신이라도 씌었나 불안해서 막 내가 소리질렀어.
철수의 말에 어이가 없어 영희는 나온 문을 열어 안을 훑어봤어요. 아까전에 얘기를 나누던 동아리 회장, 선배들은 그곳에 없었고 을씨년스런 의자와 탁자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다음날, 철수와 영희는 날이 밝는데로 산장에서 내려와 수소문을 해보니 그 근처에서 어제 버스가 전복됐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동아리 회장이 영희에게 얘기했던 그 사고는 철수가 당한 사고가 아니라 철수를 제외한 동아리 사람들이 당한 사고였어요.
만약 영희가 동아리 사람들의 말에 홀려 철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동사했을까요? 그리고 철수는 그런 영희를 바라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얼마나 괴로워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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