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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서 우연히 얘기를 들었다. (공포썰, 괴담)

미스털이 사용자 2024. 6. 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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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금입니다.>

 

 

 

나는 서울에서 대구로 가는 기차를 탔다. 
평일인 데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라지만 기차칸의 승객이 나 하나밖에 없다는 것은 상당히 겪기 힘든 경우였다. 
자리를 옮겨 그래도 사람이 좀 많은 칸을 찾아볼까라는 생각도 해 봤지만 이내 그만뒀다. 
애도 아니고,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할 나이는 지났지 않은가. 
 
출발시간까지는 아직 몇 분이 남아 있었다. 
역의 매점에서 읽을거리를 사는 걸 까먹었네라고 깨달았지만, 
이제 와서 매점까지 다시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기에 한숨 자기로 마음먹었다. 
좌석에 비스듬히 기댄 채, 외투를 벗어 얼굴 위에 헐렁하게 덮어 놓았다. 
하지만 낮에 잠을 좀 자 둔 탓인지 영 잠이 오질 않았다.
 
몇 분을 그렇게 있다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기에 외투를 벗어던지고 차창 밖 구경이라도 하고 있을까 생각하던 찰나였다. 
기차칸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발자국 소리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가 싶더니, 
바로 옆쪽 건너편의 좌석에 누군가가 털썩, 걸터앉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큰일 날 뻔했네요 선배님, 하마터면 진짜 놓칠 뻔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안마방 작작 가라고 했잖냐 짜샤, 아직 젊은 새끼가 왜 그렇게 밝히는 거야?"
 
"아 안마방 간 거 아니에요! 옆에 사람도 있는데 좀 조용히 해주세요 선배님."

"뭐 어때 짜샤, 자고 있는 모양인데, 그러는 네 목소리가 더 크다. 
애초에, 안마방 마니아가 안마방 간 게 뭐 그리 이상한 일이야?"
 
 
 
목소리의 주인들은 각각 청년과 중년의 남성으로, 각자가 가늘고 굵직한 맛이 뚜렷한 게 
직접 보지 않아도 주인의 얼굴이 절로 떠오를 만한 특색이 있었다.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이는 날 의식한 탓인지 두 명의 목소리가 한층 작아졌지만, 
눈을 감고 있는 데다 애초에 기차칸이 텅 비었기 때문에 들리는 것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진짜 안마방 간거 아니라니까요 글쎄, 잠시 친구랑 볼일 좀 보고 있었어요. 
오랜만에 만난 중학교 동창인데, 갑자기 부르시고."
 
"별 수 없잖아 짜샤, 너랑 나 빼고 모두 딴데 묶인 몸인데 그럼."
 
"강칠현이 그 새끼 어저께 잡아 쳐넣고 좀 쉬나 했더니만... 그래, 무슨 일이라는데요?"
 
 
 
몇 마디의 대화를 더 듣자, 두 사람이 형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젊은 목소리의 말로 미루어 보아 무언가 급한 일이 생겨 오밤중에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모양이었다. 
 
 
 
"여하튼 그래서, 반장한테 갔더니 시팔, 살인이란다. 그것도 연쇄 살인. 벌써 열 명 가까이 죽었대."
 
"예?!"
 
 
 
젊은 목소리의 화들짝 놀라는 소리. 
나 역시 얘기를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헉하는 소리를 낼 뻔했으니까. 
이런 시간에 기차를 타면서, 바로 옆자리에 앉은 형사들로부터 살인이니 뭐니 하는 얘기를 엿들을 거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잠깐의 정적이 흐르는 사이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기차가 출발했다. 
덜커덕 덜커덕, 외투를 뒤집어써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껌껌한 시야 속에서 기차 소리만 울려 퍼졌다. 
젊은 형사가 입을 연 것은 이 분 정도가 더 지나고 나서였다.
 
 
 
"열명 다 대구에서 죽었답니까? 아까 대구에서 강력계 일 맡는 애하고 전화했는데 그런 소린 않던데요."
 
"아니, 인천이야. 
원래 그쪽 애들이 맡고 있던 사건이었는데, 
오늘 저녁에 유일한 용의자를 서울역에서 목격했다는 제보가 들어왔어. 
서 있던 플랫폼 위치가 이 노선의 기차를 탄 것 같다는데." 

"근데 그건 대구 쪽 애들이 알아서 할 문제지 왜 우리 보고 가라 한답니까? 
원래 우리 관할도 아니라면서요."
 
"아직 대구 쪽엔 연락이 안 간 모양이야."
 
"아니, 대체 왜…"
 
"아직 언론에 까발려진 내용도 아니니까, 공치사를 다 저쪽에 넘기기엔 아직 이르다는 거지. 
말하자면 얘기가 길어져."
 
 
 
내가 형사들이라면 지금 이 기차에 범인이 숨어 있을지 않을까 하고 간단한 수색이라도 한번 고려해 봤으련만, 
목격 제보가 들어왔다는 때와 한나절 정도의 차이가 나서인지 그들은 굳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는 듯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는 척을 유지했다.
 
 
 
"그럼 우리 둘만 수사 진행하는 겁니까?"
 
 
 
형사라고는 해도 두 자릿수의 사람을 죽인 연쇄살인범을 단 두 명이서 맞닥뜨린다는 생각 때문일까, 
젊은 쪽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다.
 
 
 
"걱정 마라 짜샤, 두 명만으로 끝을 볼 것 같았으면 아무리 사람이 없기로서니 너 같은 반년 짜리는 데려오지도 않았겠지. 
묶인 일 끝나는 바로 더 오기로 했어. 아마 내일 점심쯤이면 다들 서울에서 기차를 탈 거다. 
우린 가서 사전 준비만 먼저 하고 있으면 돼."

"그런가요..."
 
 
 
 
비웃을 만한 일은 절대 아니었지만, 
다행히라는 듯 휴 하고 한숨을 크게 내쉬는 소리가 뭔가 우스워서 그만 쿡 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바로 숨을 멈추고 바짝 긴장했지만, 그 둘에겐 전혀 들리지 않았는지, 잠깐의 멈춤도 없이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근데 어떤 미친놈이랍니까?"
 
"그게 말이지, 진짜 어이가 없더라니까. 너도 들어 보면 알겠지만...
이 얘기를 백 퍼센트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예?"
 
 
 
종잇장 펄럭거리는 소리. 이어서 젊은 목소리의 탄성.
 
 
 
"우와. 진짜 잘 생겼네요."
 
"직업이 무려 배우란다. 
영화를 찍기로 되어 있었는데, 영화 이전에 이미 연극이나 이런 쪽에선 이름난 유망주였대."
 
"근데 그런 유망주께서 어쩌다 연쇄살인범이 된 겁니까? 
뭐 사이코패스나 이런 건가요? 
하긴, 사이코패스들이 원래 겉으로는 매력이 넘친다고 하더라구요."
 
"아니, 그거랑은 좀 다른 것 같다던데 의사 말로는." 
 
 
 
그러면서 굵은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초여름쯤엔가, 올겨울에 촬영을 들어가기로 해 놓고 영화 배역이 정해졌다는 거야. 
무슨 공포? 액션? 여하튼 영화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살인범 역할을 맡았다는데, 
이게 상당히 큰 제작비에 영화계에서 꽤 알아주는 감독까지, 무지 기대작이었다는군. 
당연히 카메라 앞에 처음 찍는 입장에선 긴장이 되려야 안 될 수가 없었겠지. 
거기 파일 넘겨보면 알겠지만 지인들 말로는 대본 보면서 연기 준비하는 데 무지 스트레스받았대 나 봐."
 
"그 스트레스 때문에 살인을?"
 
"아니 인마, 얘기 끝까지 들어 봐 짜샤. 
여하튼 몇 달이 지나도 연기가 좀처럼 마음대로 되질 않으니까 이 양반이 일종의 극약처방을 한 모양이야. 
하루에 열 시간 가량을 대본 읽으면서 연습하는 것도 모자라서, 평소 생활에서 마치 자기가 그 배역 속의 인물 인양 행세를 한 거지. 
말투나 머리모양이 바뀌는 건 보통이고, 
평소에 사교성 좋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 지인들끼리의 모임 같은 곳에도 안 나가기 시작하더니, 
날이 갈수록 연락이 되는 횟수조차 뜸해지고 사건이 벌어지기 일주일 전부터는 
친구들이 찾아가 집문을 두드렸는데도 얼굴조차 내밀지 않고 쫓아버렸다고 하더라고. 
완전히 작품 속에 나오는, 음침하고 기분 나쁜 악역으로 사람이 바뀐 거지. 
가택수사 때는 일기까지 몇 권 나왔다는군."
 
"일기요?"
 
"그래, 작품 속 인물에 몰입하기 위한 일종의 연습 방법이었던 모양인데, 
작중 인물의 시점으로 쓴 일기가 적혀 있었대. 
헌데 이게 가관인 게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앞부분은 누가 봐도 그저 어설프게 범죄자를 흉내를 내는 일반인의 일기지만, 
장수 가 뒤로 넘어갈수록 점점 증세가 심각해져서, 
맨 뒤쪽 부분의 경우에는 정말 범죄자의 것과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라고 하더군. 
범죄 심리 쪽 전문가가 혀를 내두를 정도니 말 다 했지."
 
"그럼 설마..."
 
"네 예상대로다. 
열 명 중 아홉 명은 특이한 방법으로 살해당했어. 
일단 근육 이완제를 써서 피해자를 산 채로 제압하고는, 온몸을 꽁꽁 묶고 신체 모든 부위에 무수한 칼자국을 내는 거지, 
내장까지 손상될 정돈 아니지만 출혈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그리곤 과다출혈로 죽을 때까지 상대방을 응시한다..., 
실제로 범인이 피해자를 죽을 때까지 보고 있었다는 증거도 목격도 없지만 아마 확실할 거야. 
대본에 적힌 녀석의 배역의 살해 수법이 바로 그거였거든."
 
 
 
젊은 목소리가 질렸다는 투로 길게 신음을 내뱉었다. 
확실히 이미 잔인함의 여부를 떠나 과연 사람의 행위인지 그 자체가 의문이 들 만큼의 잔혹한 행위다. 
외국이라면 모를까 한국의 경우에는 이렇게까지 피해자에게 가학적인 행위를 가하는 연쇄살인범의 전례가 존재하지 않으니. 
더욱이 앞으로 범인과 직접 맞댈지도 모르는 형사의 입장에선 보통 소름 돋는 소리가 아니겠지.
 
 
 
"근육 이완제는 어떻게 구했답니까?"

"병원에서 훔쳤다는군. 
내가 방금 열 명 중 아홉 명이라고 했지? 
다른 피해자들과 유일하게 다른 방법으로 살해당한 것이 이 간호사였어, 
강간당한 후 병원 지하주차장의 청소 용구함에서 발견되었지."
 
"진짜 엄청난 이야기네요, 
작중 인물에 몰입을 지나치게 해서 생긴 정신질환이 계기가 되어 죽었다는 배우의 얘기는 들어 봤지만
이건..."
 
"그렇지. 정말 기가 막힌 이야기이지. 
평소 주위의 평판은 바른 생활 사나이 그 자체였다는데. 
단지 연기를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극악무도한 살인범이 되다니."
 
"말 그대로 성실이 낳은 비극이군요. 아이러니네요."
 
 
 
그리곤 저마다 생각에 잠긴 듯, 두 사람의 대화는 여기서 끝났다.
나 역시 이 엄청난 이야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성실이 낳은 비극이라...
언뜻 보면 젊은 형사의 결론이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난 좀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뛰어난 집중력과 풍부한 감수성의 소유자라고 해도 단지 극중 배역에 몰입했다는 것만으로
선하던 사람이 갑자기 완벽한 살인마로 탈바꿈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선에서 악으로의 일차원적인 변환이 아니라, 무언가의 개입이 있었다면?
 
그래. 예를 들면,
그 배우라는 자의 마음속에, 배역을 맡기 전 아주아주 오랫 적부터 계기가 되는 씨앗이 잠들어 있었다고 하면 어떨까?
물론 이 씨앗은 가치관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기엔 그 크기가 아주 작은 데다 마음속 저 깊은 곳에 꽁꽁 숨겨져 있어서,
그것을 가지고 있는 본인 또한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인생을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씨앗이란 건 언제까지나 땅속에 파묻혀있지만은 않는 법이다.
깊은 곳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는 씨앗일수록, 수분이나 영양분 등의 조건이 맞춰졌을 때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 씨앗의 성장을 촉진시킨 조건은 다름 아닌 그의 배역이 되는 것이다.
배우로서 오래 생활해온 그로서도 전례가 없을 정도의 악역으로의 깊은 몰입.
그 몰입이 절정에 달했을 때,
배우라는 자는 연기의 성취보다도 배는 만족스러운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은 아니었을까?
 
 
뭐, 내가 이렇게 생각해 봐야 진실은 본인만이 아는 것이겠지.
한동안의 긴장 섞인 몰입과 사색을 거치고 나자 몰려오는 졸음을 느낄 수 있었다.
두 형사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때울 수 있게 된 셈이었다.
물론 그런 데에 쓰일 얘기치고는 지나치게 스케일이 큰 얘기였지만.
 
기분 좋은 한숨을 작게 내쉬며 눈을 감았다.
반쯤 잠이 들려는 가운데 두 사람이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졸음이 깰 정도는 아니었지만 자연스레 집중이 되면서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야 짜샤." 
 
"네 선배님?" 
 
"그러고 보니 생각난 게 있는데 말이야. 
아까 얘기에 대한 건데 심각하지는 않고 그냥 심심풀이."
 
"뭡니까?"
 
"그 배우라는 새끼 말이야, 목소리가 아주 좋다 나 봐. 
대학 다닐 땐 아나운서를 목표로 한 적도 있었고, 성우 아르바이트도 몇 번 했다던데."
 
"그렇습니까?"
 
"또 목소리가 좋은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닌 게, 성대모사도 아주 수준급인가 봐.
웬만큼 특색 있는 목소리라면 남녀노소 구분 않고 거의 똑같이 따라 하는 게 가능하다고 하더라고."
 
"와. 멋지네요."

"그지? 아마 내가 그 새끼라면 여러모로 유용하게 써먹었을 거야, 
예를 들면 그 재수 없는 간호사 년 낚을 때도 말이지, 
인터콤에 대고 의사 두 명이 있는 것처럼 목소리를 번갈아서 들려주니까 반색을 하고 문을 열어 주더란 말이지. 
문을 연 다음 내 얼굴 봤을 때의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 
정말 죽이는 재능이라니까."
 
"우와."
 
 
 
"또 이런 사용방법도 있지, 거의 자정이 다 돼서 기차를 탔는데 이게 웬 떡이야.
열차 칸에 웬 놈 하나만 외투를 뒤집어쓰고 덩그러니 앉아 있는 거야.
마침 심심할 것 같았던 찰나였는데 하느님이 보우하셨지.
딱 봐도 외투로 덮은 게 자꾸 꼼지락거리는 게 자는 척만 하는 것 같은데
이 새끼를 어떻게 하면 재밌게 갖고 놀다 죽일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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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털이] 열차에서 엿들은 대화 (소름, 공포썰)

<※ 브금입니다.>나는 서울에서 대구로 가는 기차를 탔다. 평일인 데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라지만 기차칸의 승객이 나 하나밖에 없다는 것은 상당히 겪기 힘든 경우였다. 자리를 옮겨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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