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세인트루이스, 미주리, 미국
당시 미주리에는 짐 크로 법으로 인해
캘리포니아에서 존은 누나의 친구, 베릴을 만나 사귀게 되고
캘리포니아에서도 흑인들에게 주어진 기회는 한정적이었다
존은 라디오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새로운 기회들을 놓칠 수 없었던 존은
미국인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터번을 쓰고 온화한 미소를 짓는 인도인 판딧은
1948년, 타임 포 비니라는 인형극의 배경음악 참여를 시작으로
코를라 판딧의 음악 속의 모험 오프닝
"마그네틱 테마"
1949년, LA의 KTLA 방송국을 통해
본인 이름이 들어간 프로그램까지 론칭한 판딧은
할리우드에 자택을 마련하고
당시 최고의 할리우드 스타들과 친분을 쌓으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미실루를 연주하는 코를라 판딧 (1951)
또한 음악적으로도 당시에는 대중음악에 잘 쓰이지 않던
오르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1950년대 미국 엑소티카 열풍에 탑승하여
엑소티카의 대부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놀랍게도 초기의 판딧은 방송 중에 말을 절대 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오르간을 연주하며 카메라를 응시하던 모습은
대중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고 오히려 그의 성공에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부터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아시아의 종교, 철학, 전통들을 공부하여
이와 관련된 토크쇼와 강의까지 진행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갔다
1970년대 이후, 그의 인기가 사그라들기 시작했지만
그는 코를라 판딧이라는 캐릭터를 버리지 않고
꾸준히 활동을 이어나갔다
판딧은 더 이상 캐릭터가 아니라 그의 새로운 자아가 된지 오래였다
그리고 1990년대 반짝 인기를 다시 누린 판딧은
1998년 숨을 거둔다
그리고 2년 후
베일에 싸여있던 그의 정체를 밝히는 글이
LA 잡지에 실리게 된다
해당 글을 쓴 R. J. 스미스에 의하면
판딧은 친척들을 만날 때도 매우 비밀스럽게 만났으며
자녀들도 데려가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그의 자녀들은 판딧이 흑인이라는 루머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위의 글이 출판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코를라 (2015)
그의 생애를 그린 다큐멘터리
차별과 억압을 피해, 그리고 성공을 위해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평생을 살아간 그
시대, 환경, 업계의 특수성, 그리고 그의 집념까지
모두 합쳐져서 탄생한
다시는 반복되기 힘든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다
존 롤랜드 레드 / John Roland Redd (코를라 판딧 / Korla Pandit)
1921-1998
https://mrlee.co.kr/pc/view/mystery/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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