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계에 배심원들이 넘어가지 않도록 법원은 배심원들에게 '그녀의 미모에 흔들리지 않겠다.'라는 서약서를 작성하게 했지만 이미 흔들리는 수준이 아닌 반해버린 배심원단 앞에서 그 서약은 서명 없는 계약서보다 무의미했다.
배심원들은 2시간 만에 결정을 내려 뷸라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그녀는 배심원들 하나하나에게 키스를 건네주며 고마움을 표했다.
남편 알버트는 뷸라가 무죄를 받은 것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감격에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뷸라는 36시간 만에 자신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옷을 사주며 모은 돈을 탕진하고 빚까지 써가며 그녀의 죄를 덮어쓰려 했던 남편 알버트를 버리고 떠났으며
'그이는 내가 재미있게 살길 싫어해요, 날 놀러 가지 않고 춤도 못 추고 난 그와 있으며 허송세월을 보내기 싫어요. 그는 느려요.'라는 그저'재미 없다.'라는 이유로 이혼까지 했다.
이혼 변호사는 스튜어트였다.
그럼에도 알버트는 '뷸라가 날 떠나간 게 믿기지 않는다. 뷸라는 다른 여자와 다를 바 없다. 선천적으로 연약하고 보호가 필요하다. 그녀는 내게 돌아올 거다. 내가 너무 열심히 일하느라 그녀를 내버려두어 떠난 것이다.' 오판하며 뷸라를 잊지 못하였다.
두 사람이 이혼하는데 2년이 걸렸고 1926년 9월 7일에 이혼한 뷸라는 1927년 1월 19일, 에드워드 하립이라는 복서와 재혼하였다.
에드워드의 가족들은 반대하고 이혼하였다 주장했지만 아내가 있었음에도 이루어진 결혼이었다.
남편이 어디 간 줄 몰랐던 아내는 신문에 난 뷸라의 새 남편이 자신의 남편인 에드워드인 걸 알고 애 둘을 데리고 나타났고 뷸라는 곧 남편과 폭력적이란 이유로 3개월 만에 당시 5000달러를 위자료로 받고 다시 이혼했다.
아 맞다. 임신했다고 했었는데 애는 어떻게 되었나요?
'구라야'
뷸라라는 유명세를 가지고 배우가 되길 희망했고 1928년 1월에 마커스라는 새 남자와 약혼했으나 곧 결핵을 앓게 되었고 곧 사망하였다. 재판받은 지 4년 만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고 서서히 깨달은 이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는
뮤지컬시카고의록시 하트의 배경이 되는 스토리이다.
시카고 트리뷴의 기자이자 이 사건을 비롯한 여러 사건들을 취재했던 댈러스 왓킨스가 자신이 취재했던 사건들을 엮어 각색해 만든 1926년 연극 '작고 용감한 여인'을 원작으로 한 시키고는 1927년엔 무성영화, 1942년엔 '록시 하트'라는 영화로도 제작되며 뮤지컬은 1975년 초연을 보이며 여태까지 사랑받은 뮤지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