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역사

데스마스크부터 사진까지.. 죽은이를 기억하는 방법

미스털이 사용자 2021. 10. 4. 21:06
반응형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고 했죠. 옛부터 사람들은 죽음 너머의 사람들을 계속 기리고 생각하고싶어했습니다. 이름보다 자세한 기록을 남겼고, 자세한 기록을 남기다보니 그림이 붙여졌지만 더욱 생생하고 실체에 가까운 것을 원했습니다.

 

서양에선 데스마스크라는 풍습이 생겨났어요. 죽은 직후의 사람 얼굴을 본떠 석고로 제작하는 것이였죠. 

 

당연한 얘기지만, 문화나 국가에 따라서 데스 마스크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재료나목적도 달라지는데요, 대표적인 예로 종교적, 문화적으로도 미이라화의과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정의 일부분이었던 각종 금은보화로 만들어진 이집트의 투탕카멘의 마스크가 있어요. 이집트는 죽은이를 기리기 위해 만든게 아닌 내세를 위해 만들어졌으니 데스마스크는 화려하고 번쩍번쩍 빛이 났습니다.

 

 

17세기 유럽에서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해 데스 마스크를 만드는 것은 매우 흔한 문화적 관행이었으며, 장례식 때 전시되곤 했죠. 또한 골상학이란 학문이 유행했던 18세기와 19세기쯤엔 신원파악이 불가능한 사체들의 (살해당한 피해자의 시체라든가) 갖가지 특징들을 영구적으로 보존하는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나폴레옹>

 

<알프레드 히치콕>

 

 <링컨>

 

<세익스피어>

 

<베토벤>

 

<슈베르트>

 

<장 자크 루소>

 

이건 좀 특이한 경우인데요. 벤담의 경우 얼굴과 몸 전체가 박제된 채 UCL(런던대학교)에 보관돼있습니다. (얼굴의 경우 목 부분이 썩어 얼굴이 떨어져 나가 실제 얼굴은 박제된 시신 아래에 있습니다.)

<제레미 벤담>

 

사망 시, 얼굴이 손상되어 식별이 불가능한 케이스에는 주로 손을 본 뜨곤 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1868에 안면에 총살을 당함으로써, 암살당한 캐나다의 정치가, Thomas D’Arcy McGee의사례가 있다.

 <Thomas D’Arcy McGee>

 

데스 마스크와 비슷한 관행이지만 19세기 사진기술이 발달하다보니 포스트 모템 사진 (Post-Mortem Photography) 문화가 생겨났어요. 죽은 사람의 시신을 각종 도구로 고정시켜 사진찍었다고 합니다.

 

 

 

1839, 상업적으로 가장 최초로 성공한 사진촬영 기법인 다게레오타이프(Daguerreotype)가 등장한 이후로, 초상화를 그릴 화가를 고용할 돈이 충분하지못하였던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 있어서 다게레오타이프는 일반 초상화보다도 훨씬 더 빠르고 저렴하게 죽은 자를 추억하고 기릴 수 있는 굉장히 혁신적인 기술이었습니다.

 

<기계에 고정된 시신>

 

 

이러한 방식의 포스트 모템 사진은 주로 유아나 성장기의 어린이들을 촬영하는데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는빅토리안 시대 당시, 유년기의 아이들의 사망률이 굉장히 높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후에 발명된 ‘carte de visite’라는 이름의 다중 인쇄기술은 죽은 아이의 사진들을 마치 우편 카드 보내 듯이 주변 지인들이나 친척들과도 함께 나눌 수 있게 해주었다.

 

 

 

이 관행은 19세기말, 스냅샷 기술이 등장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집니다. 만약 이게 지금까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반응형